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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검은 너를


커피-검은 너를!

오늘은 일요일, 여러분과 쌉쌀하면서도 느긋한 이야기를 해도 되리라.

평소 느긋하게 아홉시경에 일어나 먹는 아침 식사는 행복하다. 그는 이미 일하러 가고 없다. 나 혼자 침대 속에 남아 있다가, 지난 밤의 깊은 숙면 후 아침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은 날마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침대에서 얼른 일어 나지 못하고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이불에 감싸여 미적거린다. 정말이지 침대는 너무 아늑하다. 너무 포근하다. 나는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인생을 망친 사람이다,ㅎ. 거기서 잠도 너무 많이 잤고, 너무 많이 유희하였다.

퍼뜩 이불을 걷어 치우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괴로움에 떨면...

그러구 있으면 어디선가 갑자기 또닥 또닥 들리는 소리가 있다. 봄비가 창가에 떨어지는 줄 안다. 그러나 아니다. 그건 말이지...커피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이다. 어디서 떠내려 온 그윽한 커피향이 내 후각에 스며든다. 흠 흠... 그제서야 나는 침대를 박차고 기필코 일어난다. 그런데 사실 커피가 끓었냐 하면 그게 아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나자 나의 오감들이 상상 속에서 이미 커피를 끓이기 시작한 덕분에 부엌에서 보글보글 커피 끓는 소리도 들리고 커피 향기도 맡은 것이다. 얼마나 커피가 맛있길래... 아침마다 마셔도 싫증나지 않을까...

날이면 날마다 다시 그 신선한 아로마 향기와 검은 색깔과 맛으로 유혹하는 커피. 나는 너에게 깨끗이 굴복했어. 널 떼어 놓을 수 없다구...미국에 사는 어떤 친구는 자기집에는 커피가 없다고 하였다. 왜냐구? 건강에 않 좋으니까 식구들이 일부러 않마신다고 했다. 대신 차를 마신단다. 아이코, 커피 안마신다고 얼마나 더 오래 사는지는 모르겠다만 분명한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미각 하나를 잃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수학자겸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세상에 좋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하다고 그의 "행복론"에서 밝히고 있다. 나는 러셀의 이 말을 내내 신봉한다. 예를 들어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딸기를 안먹는 사람보다 행복할 계기가 훨씬 많다. 딸기 먹을 일이 좀 많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야구경기를 안 즐기는 사람보다 몇배나 즐거울 건수가 생긴다. 야구 경기는 수시로 있다. 이런 의미에서 커피 아니 마시는 그 친구는 수 많은 다변한 맛의 기회와 행복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커피와 어울리는 그 많은 음식들의 맛 그중에서도 커피와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들, 딸기, 크림 케이크 등등...그 뿐이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커피 마시는 그 순간만이라도 잔잔한 행복을 수시로 느낀다.

그건 그렇고 나는 크림색 커피 마시네(Maschine)에 커피 끓일 준비를 해놓고 우선 빵사러 나간다. 내 집 아래층에는 자그마한 백커라이가 있다. 9시만 되면 어김없이 갓 구운 여러 종류의 신선한 아직도 따끈따끈한 빵들이 진열된다. 내가 사는 것은 거의 매일반, 애식하는 초생달 모양의 불란서 크레송이다. 갓 구워낸 크레송은 사들고 오는 빵 봉지 안에서 따스하다. 말랑말랑하다.

입에선 군침이 돌고 빵을 사는 자리에서 한입 바로 먹어버리고 싶지만 숙녀 체면에 그럴 순 없고 집까지 무사히 대동한다. 따뜻한 삶은 계란, 빨간 딸기잼, 버터, 그리고 이 따끈한 초생달 크레송이 있으면 나의 아침 식사는 그저 행복하다. 프리슈틱크에 피아노 선율도 함께 하지만 아주 낮은 소리이다. 옆에 신문이나 책자가 있어도 되고 낮은 소리의 라디오가 있어도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제는 커피와 빵이다. 늦잠이 많은 나 덕분에 그는 혼자 빵 먹고 나간다.

하지만 저녁은 꼭 잘먹는다. 나 덕분에.


조용히 아침 식사를 하면서 바라다 보이는 창 밖 풍경은 언제나 평화다.

궂은 날만 빼고는. 아침의 평화와 안락...

충분히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다.

이런 느긋한 만족 속에서 나는 날마다 검은 커피가 잠 깨는 순간 그리워진다. 아침 빵이 그리워진다. 이 진한 그리움이 강해서 내 노곤한 몸이 침대를 박차고 나오는 동력이 된다...ㅎㅎ. 커피여 너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의 프리슈틱크 (아침 식사)를 매혹적으로 만드는 커피는 색 다른 정복(?)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름을 잊어버린 한국의 유명한 문화 평론가 (이광주?)가 알려 주는 커피 이야기는 한잔 마시는 커피의 맛을 더욱 미각스럽게 해준다. 다음은 이광주(?)의 커피 이야기이다.

커피의 역사는 맞수인 차(tea)에 비해 훨씬 뒤진다. 하지만 10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후 사라센을 거쳐 유럽에 전파된 커피는 이후 폭발적인 인기로 차를 압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커피를 열광적으로 수용한 유럽은 기독교 세계였다. 이교도인 무어인들로부터 들여온, 그래서인지 빛깔이 이교도처럼 검붉은 이 정체불명의 액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황홀하게 했다.

유럽인은 곧 ‘악마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16세기 로마교황 클레멘트가 “사탄의 음료가 왜 이다지도 맛있는가. 세례를 주어 사탄의 저주를 물리친 다음 참된 기독교인의 음료로 만들자”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유럽문명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탄의 음료인 커피다. 하긴 커피도 이제 교황의 세례를 받아 성 만찬에 사용되는 와인과 함께 ‘성(聖)’의 반열에 올랐으니 더는 ‘악’이 아니다. 불교의 ‘반야심경’은 만물의 현상론과 실존론을 아울러 ‘색(色: Farbe), 성(聲: Laute), 향(香: Duft), 미(味: Geschmack), 촉(觸: Ruehre), 법(法: Gesetz)’이라 했다. 필자는 커피가 이를 두루 갖춘 만유(萬有)의 음료라고 생각한다.

첫째, 한잔의 커피 빛깔. 아무리 들여다봐도 백 길, 천 길이나 되는 가없는 깊이다(色). 둘째, 커피물 끓는 소리를 동트는 새벽이나 한밤중에 홀로 듣자면 세상의 어느 현(絃)이 내는 소리보다 감미롭고 애절하다(聲). 셋째, 커피를 볶을 때 또는 갈아 내릴 때 그 내음은 100송이의 장미보다 향기롭다(香). 넷째, 쓴맛·단맛을 아우르는 커피의 맛은 바로 인생의 맛이다(味). 다섯째, 커피의 비할 데 없는 오묘한 향과 맛이 오관을 통해 몸 안으로 두루 퍼질 때 우리의 육신은 화사한 봄바람에 나부끼는 한 떨기 민들레다(觸). 여섯째, 커피는 나의 삶이요, 진리요, 실존이다(法). 이 밖에 무슨 말이 더 있겠는가!

한마디로 커피는 그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쌉쌀한 맛과 그윽한 검은 색깔, 검은 피부와 거부 할 수 없는 멋진 향기를 무기로 날마다 나 김세린을 그의 마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한마디로 나는 그에게 포획 당했다,

그러나 행복한 납치이다.

커피는 나의 복된 삶을 책임지고 있다. ㅎ


랄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