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잭 수석디자이너 이탈…국내시장선 호불호 엇갈려
↑현대차 '쏘나타'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해온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쳐'(Fluidic Sculpture, 유려한 역동성)가
기로에 섰다. 해외시장에서의 호평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데다
디자인 기조를 총괄하던 핵심 인재까지 이탈했기 때문이다.
◇유려한 역동성 美 쏘나타 20만대 판매 성공
↑필립 잭 전 현대차 미국연구소 수석 디자이너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디자인을 맡아 플루이딕 스컬프쳐 개념을 확대시켜온
필립 잭(Zak) 현대차 미국연구소(HATCI) 수석 디자이너(사진)가
최근 미국 GM의 글로벌 아키텍쳐 디자인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
잭 수석 디자이너는
22년간 GM에서 근무하며 GM유럽 디자인 책임자로 일하다가 2009년 4월 현대차에 영입됐다.
그는 쏘나타와 아반떼, 엑센트, 그랜저 등 최근 출시된
현대차의 신차 디자인을 주도해왔던 만큼 이번 이동으로 디자인 기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디자인은 수석 디자이너에 따라 그 색깔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차의 새 디자인은
국내 보다는 해외, 특히 미국시장에서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2월 미국시장에 첫 선을 보인 신형 쏘나타(YF)는 작년 미국시장에서 19만6623대가 판매됐다.
현대차 모델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승용차 부문 최다판매 순위 8위에 올랐다.
경쟁차인 토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과 비교해도
쏘나타의 역동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플루이딕 스컬프쳐에서
파생된 '윈드 크래프트'(Wind Craft, 공기의 역동적인 움직임)를
모티브로 한 신형 아반떼(MD)역시 미국 출시 초기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잭 수석 디자이너는 2009년 4월 현대차로 자리를 옮겼고
쏘나타는 2009년 9월 출시된 만큼 잭이 실제 쏘나타 디자인에 참여한 부분이 크지 않다"면서
"플루이딕 스컬프쳐는 글로벌 업체로의 도약을 위해 현대차가 준비해온 디자인 철학인만큼
앞으로도 이어질 것 "이라고 말했다.
◇중·대형차가 너무 튀어…국내선 호불호 갈려
반면 국내시장에서는 플루이딕 스컬프쳐에 대한 반응이 엇갈린다.
젊은층은 역동성이 강조된 플루이딕 스컬프쳐에 호감을 나타낸 반면 중장년층은
점잖은 맛이 떨어진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쏘나타 등 중대형차를 구매하는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중장년층이라는 점이다.
1999년부터 12년간 국내 승용차 시장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지킨 쏘나타는
작년 월별 판매 실적에서 기아차 K5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러자 현대차는 150만원의 할인혜택이 있는 '1% 초저금리'를 도입,
가까스로 K5를 앞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달에도 현대차는 쏘나타에 대해
연간 최대 240만원의 주유비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현대차 '그랜저'
이후 출시된 신형 아반떼나 신형 그랜저 역시
플루이딕 스컬프쳐를 기반으로 했지만 역동성을 강조하던 선 사용을 줄였다.
현대차 대리점 관계자는 "중장년 고객들은 세련되면서도 품위 있는 디자인을 선호하는데
최근 현대차의 디자인은 파격미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중대형 수입차들과
비교해서도 너무 앞서간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후발주자로 브랜드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한 현대차가 단기간 내 성장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디자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또 쏘나타를 기준으로 볼 때 국내 중형차 시장(31만대) 보다 5배 이상
큰 미국 중형차 시장(170만대)을 공략하기 위해
기존 다른 메이커들이 시도하지 않은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시장규모가
큰 미국에서는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 중형세단을 선호하는 고객들만 잡아도
상당한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안정적인 국내 시장보다는 선진 시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
플루이딕 스컬프쳐라는 현대차의 새 디자인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차 미국법인 고위직 인사들이 잇달아
GM으로 자리를 옮겨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잭 디자이너에 앞서 지난해 현대차 미국법인에서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일하던
조엘 에와닉과 크리스 페리가 차례로 GM으로 이직했다.
에와닉과 페리는 현대차 미국법인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며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신차 구입 고객이 실직할 경우
차를 되사주는 캠페인)을 도입해 화제가 됐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미국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현대차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GM이 이들을 영입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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