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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의 전설이 나는 가수다로 급격히 몰락한 이유

일밤의 전설이 나는 가수다로 급격히 몰락한 이유

한때 천하를 호령할 정도로 대세를 이어갔던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가 KBS2 '1박2일'과 SBS '패밀리가 떴다'에 밀려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구세주처럼 기다렸던 이름이 있었다. '양심냉장고'와 '느낌표'로 대표되는 인물 김영희 PD였다. 김영희 PD는 2000년대 MBC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었기에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꽃을 피워줄 유일한 인물로 보이기도 했었다.

김영희 PD도 자식같은 '일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병상에 누워 숨결이 약해지고 의식을 잃어가는 자식의 모습에서안타깝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한걸음에 달려가서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몸에 좋다는 약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먹이려 드는게 부모의
 심정이니 말이다. 그러나 김영희 PD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제22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으로서 일선에서 물러나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9월 2년의 임기를 마친 그가 달려간 곳은 당연히 '일밤' 현장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은 체질개선이었다. 기초 체력이튼튼해야 잔병치레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자신있는 분야인 공익을 기초 체력으로 삼았다. 덜 웃겨도 감동이 있다면 충분히 승부가 가능하다는 심산이었다.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다른 경쟁 프로와의 차별화도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2년간 현장을 떠나있었던게 김영희 PD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 사이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쟝르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었던 것이다. 웃음과 감동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는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경규나 '느낌표'에서 함께했던 유재석 등은 각기 경쟁 방송에서 맹활약 중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서 헤딩해야할 처지였다.

그래도 김영희 PD는 역시 대물이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로 제작진을 이끌고 가는 통큰 기획을 성사시킨 것이다. 김영희 PD가 아니었다면
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1인당 수백만원, 전체 참여인원을 고려할 경우 수 억원이 드는 비용을 들여 오염된 물로
고생하는 마을에 700만원짜리 우물을 파주고 왔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공익도 좋지만 재미없다는게 이유였다. 김영희 PD의 복귀 기념작이라고 할 수있는 '단비'는
 수십억의 비용만 허공에 날린채 쓸쓸하게 잊혀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렇다할 대표작을 내놓지 못하고 '헌터스', '뜨는 형제들', '오늘을 즐겨라' 등으로 헛발질만 이어갔다. 한때 그가 손만대면 황금으로 변해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황금이 아니라 돌로 변하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김영희는 김영희였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실력파 가수 7명을 한자리에 모았을 뿐만아니라 그 중의 하나를 서바이벌 형식으로 탈락 시키는 경악스러운 기획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이른바 '나는 가수다'의 탄생이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가수 백지영도 김영희 PD의 말빨에
넘어갔다고 얘기할 정도로 김영희 PD의 기획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발상이었다. 김영희 PD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 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영희 PD는 바로 그 대단한 '나는 가수다'로 인해서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와 수모를 감수해야만 했다. 기획은 참신했고
가수들의 열정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도 했지만 단 한번의 결정적인 오판에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500명으로 구성된 청중평가단의 판정을 무시하고 서바이벌을 예고했던 시청자와의 약속을 외면한 댓가였다.

물론 '나는 가수다'로 인해서 실력파 가수들의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던 점은 고마운 일이었다. 첫회를 통해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알게되었고 2회에서는 정엽을 통해서 소울로 부르는 '짝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 백지영의 흐느끼는 '무시로'도 일품이었다. 3회에서는 윤도형식 락버전으로
완벽하게 거듭난 '나 항상 그대를'을 들을 수 있었다. 소름끼치도록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감동을 좀먹는 무식한 편집 때문에 흐름이 깨어지기 일쑤였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가수들이 전해주는 분위기에 젖을쯤 되면 찬물을 끼얹거나 뒤통수를 후려치는 식으로 방해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이소라의 추태나 김제동의 어거지 등 내보내지 않아도 될 아니 차라리 내보내지
말았어야 할 내용까지 전파를 타게 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제작진 스스로가 차초한 결과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김영희 PD는 2년 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다. 당연히 현장감이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가 없는 사이 세상은 변해있었다. '일밤'의 발편집이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채 시청자와의 약속을 깨는 독선도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현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채 자신만이'일밤'을 살릴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이 화를 자초했던 것이다.
그런 김영희 PD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개그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봉숭아 학당'의 왕년에가 떠오른다. 그가 "내가 한때는 어마어마 했거든"하면서 떠벌리듯이 김영희 PD도 왕년의 어마어마했던 시절에 함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생명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래도 그에 수긍하고 처음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영희 PD는 어설픈 리얼을 선택했다. 세상이 변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현장을 떠나있었던 2년간의 공백이 길어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