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쌩뚱맞은 수퍼 히어로물 '초능력자'
과거에는 '수퍼 히어로'하면 일종의 법칙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섞여 살아가다가 위기 상황이 나타났을 때 '짜잔~'하고 등장해 구해주고는 사라져버리는 정의로운 사나이, 마치 자우림의 노래 '격주 코믹스'같은 설정 말이다.
"저 머리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오존층이 깨졌을까
운동도 안하면서 저 근육은 어떻게 만들었지
무쇠팔 무쇠다리 천하무적 근육맨...
이와같은 설정엔 꼭 필요한게 있지 근육맨에 도전하는 못된 동네 깡패들이
나쁜놈들이 항상 쓰는 방법은 근육맨 여자친구를 납치하기
정의의 주먹이 불을 뿜는다 날아라 근육맨 멋진 사나이...
싸움이 끝난 후의 어느 화창한 토요일 저녁쯤에 친구들이 모두모여 파티를 열어주면
근육맨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렇지만 최근에 등장하는 수퍼 히어로들은 어딘지 조금 비딱하다. 늘 정의롭지고, 늘 멋있지도 않다. 술에 취한채 사고만 쳐서 미움을 받는 수퍼 히어로도 있고, 자아도취에 흠뻑 빠진 수퍼 히어로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그들도 '수퍼 히어로'라는 것 자체에 이견을 두기 어렵다. 그런면에서 '초능력자'에 등장하는 수퍼 히어로는 어딘지 수퍼 히어로라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질만큼 쌩뚱 맞기 짝이 없다.
영화 '초능력자'에 대한 사전 정보는 '강동원이 초능력자이다' 정도 뿐이었다. 그리고 '초능력자'라는 제목만 봤을 때 어쩌면 유치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현실 세계와 조금이라도 어색하게 결합이 되면 유치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나의 예상마저 깨버렸다. 모 영화 소개 프로의 표현을 빌어 한줄로 요약해보자면 '근래 보기 드물게 독특한 한국적 수퍼 히어로물'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
주인공이 강동원인 줄 알았다. 이름도 없는 초인 강동원은 본인의 능력으로 인해 부모에게마저 버림받아 비뚤어진 불쌍한 영혼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에게 일말의 동정도 느끼기가 힘들다. 그건 아마도 그를 동정할만한 여지가 생길 때마다 그의 잔혹한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초인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 쉽게 사람들을 죽여 나가는 통에, 특히 이 사람은 안죽을거야라는 믿음마저 깡그리 무너트리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는 꽤 보기 힘들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고수(임규남)는 지극히 평범한, 아니 어쩌면 모자라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무시받고 있는 계층 중 하나인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임규남. 폐차장에서 일하다 쫓겨나 조그만 전당포의 '임대리'가 된 그는, 지극히 단순한 사람이었다. 좋으면 웃고, 배고프면 밥먹고, 세상 돌아가는 건 잘 모르지만 의리는 지키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지도 않다. 그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데는 0.1초의 고민도 없고, 본인이 옳다는 일을 행동으로 옮길 때 역시 0.1초의 망설임도 없어보였다.
그런 그였기에 초능력자에 맞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고민의 요소가 전혀 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나쁘다. 나쁜 사람은 잡아야 한다. 왜 이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그 능력이 자신에게 왜 미치지 못하는지는 고민해 보지도 않는다. 그의 마음을 흔들고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해 초인이 뱉어내는 독설들 역시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관객을 답답하게 만드는 임대리 성격의 끝장은, 초능력자를 기껏 잡아 경찰서로 데려가는 장면이다. 그만큼 단순하고 무식하기에, 관객은 마지막까지도 그의 존재에 대해 긴가, 민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수퍼 히어로물이지만, 수퍼 히어로물이라고 할 수 없다. 강동원이 가진 초능력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단지 그 초능력은 평범한 수퍼 히어로를 돋보이게 하는데만 쓰이는데, 그 평범한 수퍼 히어로가 '수퍼 히어로'라고 하기엔 그가 가진 능력이 어딘지 좀 멋있지도 않고 어설프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임대리'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건, 우리들 모두가 초인(초능력자)이라는 사실이다. 나에게 소중한 그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한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것이 만약 이 임대리처럼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도 발휘가 된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서 발휘가 된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영화 전반적으로는 쏠쏠하게 보는 재미가 구석구석 스며있어 감독의 센스가 느껴진다. 한국인처럼 외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 알과 버바, '유토피아'라는 아이러니한 이름이 풍자하는 전당포의 모습들. 반면에 빠른 속도감과 예상 외의 잔인함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김민석 감독, 앞으로 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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