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 '싸인'과 미국영화 '127시간'
우연찮게 인터넷의 기사를 보고 시청하게 되었던 한국 드라마 싸인은 여기 미국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CSI류의 드라마(이하 '미드'로 줄임)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점들이 돋보인 드라마였다. 물론 제작과정 에서야 미드와는 견줄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미드 CSI는 거의 영화수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탄탄하게 잘 짜여진 구성과 스토리의 전개, 게다가 등장인물들까지 솔직히 어디하나 흠잡을데가 없다. 이 모든게 물론 빵빵한 제작비가 받쳐 주기에 가능한 얘기이기도 할거다. '법의학'(Forensic)에 관심이 많은 큰 딸내미가 좋아하는 미드이지만, 애들 보기엔 끔찍하고, 도가 넘는 폭력적인 장면이 불쑥불쑥 나오는 탓에 혼자서는 보게 하지 않고 항상 같이 본다.(물론 작은 녀석은 못보게 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잘 짜여지고, 근사한 미드 CSI에 한국 드라마 '싸인'을 뭘로 견줄거냐고 물어본다면, 미드에는 오로지 사건과 범죄, 그리고 범죄의 해결과정이 리얼하게 표현되지만, 이곳 미국에서 인터넷의 버퍼링을 모아가면서 본 한국 드라마(이하 한드) 싸인은 단순히 범죄의 해결에 초점이 맞추어 진것이 아니라 그 범죄를 양산해내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에 대하여 칼을 들이대었다는 점에서 미드 CSI와는 확연하게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물론 미국에서도 고위 정치권의 부패나,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아주 적나라하게 파헤친 영화나 드라마들도 상당히 많다. 심지어는 대통령도 그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싸인의 최종회 주인공 윤지훈(박신양 분)의 결말을 두고 인터넷 공간상에서 각자의 이견들이 설왕설래 하지만(사실 나는 싸인의 마지막 결말을 인터넷 찌라시에서 결국 읽어버리고 말았다..기자들이 얼마나 상세하게도 기사를 올려놓았던지..드라마를 안 봤던 사람도 그 기사만 읽어도 눈에 그려질 정도였으니..솔직히..얼마나 김이 새고, 허탈하던지..영화 '식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야~~라고 미리 결말을 알고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를바가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물론 내가 생각했던 엔딩과는 좀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작가가 끝을 맺는 것이 '싸인'이라는 큰 주제에 가장 부합된,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결론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최종회가 편집의 미숙함이나, 음향 방송사고 같은 용납하기 힘든 옥의 티를 능가한'눈에 들보'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해도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싸인'을 남겨놓았던 법의관 윤지훈의 마지막 선택은 요즘같이 신념도, 신의도 헌신짝같이 내 팽겨치고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시류에 편승하는 것을 대세인양, 능력인양 오도하는 천박한 시대정신을 향해 예리한 부검도로 도려내는듯한 통쾌함을 넘어선 숙연함이 돋보였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국과수의 원장 이명한(전광렬 분)을 찾아간 윤지훈은 며칠후면, 어떤 사건과 연관된 사체 한 구가 국과수로 들어올텐데, 그때야 말로 이십여년전 신념을 가지고 국과수를 위해 일했던 법의관의 양심으로 그 사체가 말하고저 하는 죽음의 '싸인'을 정확하게 밝혀달라고 부탁 하는 장면이 나온다.
도저히 깨뜨릴 수 없고, 자정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철옹성같은 권력의 힘과 그 부패로 왜곡되어진 진실을 두고 세상이 원래 그런거야 하고 돌아선 것이 아니라, 죽음의 길을 택해서라도 더렵혀진 진실을 바로 세우고, 대세를 따라, 트렌드를 따라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진실성마저도 비참하게 내동댕이 쳐버리는 이 사회와 군상들을 향해 경종을 울린 윤지훈의 그 죽음앞에서 과연 누가 조소를 보낼수 있을까..
드라상에 나왔던 '윤지훈의 죽음'을 두고 어리석고, 섣부른 행동이라고 욕을 하기 이전에, 진정 이 사회와, 세상이 인간이 살만한 인간다운 곳이 되기 위해서 진정으로 자신의 삶속에서 보여주어야 할 '싸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드라마가 여느 다른 '막장 드라마'(불륜과 천박한 삼각관계 따위로 인간의 정서를 피폐하게 만드는, 순전히 전파낭비의 드라마..사실,그런 드라마는 본적도 없지만..)라고 불리우는그런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고, 기꺼이 별 다섯개를 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20회라는 제한된 시간으로 더 밀도있고, 짜임새있게 다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도 들며,최종회때 보여준 미숙한 편집, 방송사고역시 작금의 한국 드라마의 현 주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평가와 취향은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싸인의 최종회를 보면서 불현듯 최근에 본 영화 '127시간'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왜 갑자기 그 영화가 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을까를 생각하다가 결국 이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영화 127시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솔직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내가 조만간 갈려고 여행계획을 세워놓았던 유타주의 '캐년랜즈'를 배경으로 일어난 실화였다기에 더 관심이 갔던 영화였다.
주인공은 극한의 오지를 누비며, 산을 혼자서 오르는 모험정신으로 가득찬 젊은이다. 사건의 발단역시, '블루존스 캐년'으로 떠났다가 캐년의 틈새로 추락하면서 떨어진 바위틈에 자신의 손이 끼이게 된다. 도저히 혼자서는 움직일수 없는 바위, 그리고 절망적인 것은 그 절해고도와 같은 협곡의 틈새에서 일어난 일을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라는 것, 세상을 살면서 가장 절망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그런 상황속에 일순간 봉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지금 주인공이 직면한 그 상황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단코 바뀔수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된다. 그 상황속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서서히 탈진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외엔 달리 다른 길이 없다. 아니..딱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바위 틈새에 끼여 있는 자신의 팔을 절단하는 방법이 남아있다
영화는'잔인'하고 '불편'했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 치는 것이 이렇게 잔인하고, 불편하게 나 자신에게 다가오기는 처음이었다. 그 '잔인함'이라는 것이 '쏘우'같은 하드 고어류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은 그런 잔인함이 아니었다.(사실 쏘우는 '현실'을 가장한 가장 비현실적 영화같았다. 그래서인지, 그 비현실적인 잔인함이 잔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거 같았다) 영화 127시간에서 주인공이 겪는 그 삶이 영화속의 짜여진 각본의 한 장면으로만 여겨진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현실적인 절박감으로 나 자신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영화의 약점이 될수도 있다. 그 약점이 감독의 절묘한 연출로 인해 너무도 사실감있게 받아 들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슴을 짓눌렀던 그 중압감이란 것이 나 역시 살면서 어느때라도 그런 절망적인 상황-생사를 가름짓는-속에 놓일 수 있으며, 적어도 그 영화속에서는 그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하나 밖에 없다는 피할 수도 없고, 각색도 불가능한 정말로 미리 알고 싶지 않은 '인생의 스포일러'같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절단(Self Amputation)해야 하는 상황이 물론 있을 수 있다.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고, 불의한 돈을 갈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도구로 내 던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살기위해 자신의 신체를 자신이 스스로 절단해야 하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어떤 외과적인 조치도 없이, 주어진 도구라고는 '싸구려 중국제 공구'가 고작인 그런 상황말이다. 정말 생각하기도,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상황이다.(만약 그 싸구려 중국제 공구마저도 없었다면..이건 더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영화 127시간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 때로는, 비록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자신에게 있어 어느 것 하나 버릴것 없는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싸인의 윤지훈이 자신이 그렇게 강하게 확신하고 믿어왔던 것을 위해 자신의 죽음으로 그것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인간다운 삶, 진실을 위해 치루어야 할 댓가들이 우리의 삶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피하고 싶은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들'이 대부분이다. 어떨때는 그냥 주저앉아 흘러가는 세월속에 맡겨버리고 '시간이 약'이라고 믿고 싶을때도 많다.
그러나, 길이 없는 삶이란게 어디 존재하겠는가...자신의 팔을 스스로 절단하던지, 독배의 잔인줄 알면서도 그 잔을 스스로 마시던지..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만이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는 그런 삶이 분명히 있다. 드라마 '싸인' 이나, 영화 '127시간'은 요즘 이 세상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삶의 진정성'이란 것을 '죽음'으로, 혹은 '절단하는 고통'을 통해서 무엇인지 그려내고 있다.
'지금 살아있는 이 하루가 가장 중요하며, 지금 살아서 누릴수 있는 내 삶의 소소한 일상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주인공들의 독백같은 마지막 대사들이 라스트 엔딩의 스크린같이 내 머리속을 휘감으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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