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성 강한 단 음식,
지나치면 우울증 부른다
당신의 몸 망치는 잘못된 식습관
문소현(가명·37)씨는 당뇨병 약을 하루 2알로 늘리고도 혈당 조절에 실패했다. 문제는 잘못된 식습관을 바꾸지 못한 데 있다. 혈당이 210㎎/dL로 높고 체질량지수가 27.22㎏/㎡인 경도 비만인데도 하루 종일 간식을 달고 산다. 일하는 동안 초콜릿·과자·떡을 손에서 놓지 않고, 믹스커피만 6~7잔을 마신다. 의사는 “지금처럼 혈당이 계속 올라가면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암 30%는 잘못된 식습관이 원인
맛있는 음식이 많아졌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식품업체는 조금이라도 더 구미를 당기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들의 입맛을 연구한다. 얼마만큼 달아야 맛있다고 느끼는지, 어떤 맛과 혼합해야 더 맛있어지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여기에 음식점, 빵집, 수퍼마켓, 자판기 등이 도처에 있어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고서는 음식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나 잘못된 식습관은 몸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쳐 고혈압·당뇨병·동맥경화·고지혈증·비만·대장질환·암 등을 유발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는 “영양소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특정 성분에 약한 유전자가 변하게 된다”며 “잘못된 식습관과 미각이 각종 질병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혈압 환자의 상당수가 짠맛을 즐긴다. 일본 아키타현 성인의 40%가 고혈압 환자다. 주목할 것은 이 지역 주민들이 소금에 절인 생선과 염장 채소, 미소 국을 즐긴다는 것이다.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칼슘이 부족해져 골다공증이 생기기 쉽다. 단맛을 내는 음식은 뇌 속 쾌락중추를 자극해 과식과 폭식을 유도한다. 단맛을 주로 내는 탄수화물은 혈당 수치를 올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체내 지방으로 쌓인다. 탄수화물 과다로 인한 고혈당 상태는 면역기능을 떨어뜨린다. 소시지와 베이컨·감자칩 등에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이 많다. 혈액을 탁하게 하고 혈관 질환을 일으킨다. 고지방식을 선호하면 대장용종이 생기기 쉽고 대장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인 암의 30%는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다.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정인경 교수는 “병에 걸려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잘못된 식습관을 개선하지 못하면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맛 길들여지면 고치기 어려워
무엇이 좋고 나쁜 음식인지 잘 알면서도 한번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입맛도 일종의 중독이다. 입 안과 그 주위에는 2000~5000개의 미각세포가 있다. 미각 수용기는 혀 표면에 가장 많은데 자극을 감지하면 뇌에 신호를 보낸다. 특정 맛이 뇌의 식욕조절중추를 자극하면 쾌락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마약을 투약하거나 담배 니코틴에 중독됐을 때 반응하는 영역과 같다. 약물 중독자가 더 강한 약을 찾듯 단맛이나 짠맛·매운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더 많은 자극을 갈망한다.
단맛은 중독성이 가장 강하다. 단 음식을 먹었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운동이나 대화를 할 때 분비되는 도파민과 달리 금단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단맛을 느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갈망이 심해지면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우울한 증상까지 나타난다. 설탕에 중독됐다가 우울증을 겪는 금단증상을 슈거 블루스(sugar blues)라고 한다. ND케어클리닉 박민수(가정의학과) 원장은 “단 음식을 먹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잠깐일 뿐, 혈당이 떨어져 집중력이 저하되고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돼 스트레스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장류와 국물 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데 짠맛 중독도 금단증상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대 통합생리학과 킴 존슨 박사에 따르면 소금이 많이 들어간 사료를 쥐에게 먹이다 소금을 줄이면 쥐의 활동량이 줄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매운맛을 먹으면 입 안에선 통각을 느끼지만 뇌에선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더 많은 엔도르핀을 갈망하면서 강한 매운맛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처럼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잘못된 입맛의 유혹에 더 약하다.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점점 센 자극을 찾게 된다”며 “한번 자극적인 맛에 노출되면 순한 맛으로 되돌아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커피 마신 뒤엔 물 2잔 ‘필수’
입맛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어서 바꿀 수 있다. 박민수 원장은 “인스턴트식품이 맛없게 느껴지고 건강식이 맛있게 느껴지도록 입맛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맛 자극을 통제해야 벗어날 수 있다. 우선 입 안에 머물고 있는, 뇌에 각인된 맛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식사를 한 뒤는 물론 음료수를 마시더라도 양치질로 치아와 혓바닥까지 닦아낸다. 치약 중에서도 식욕을 가시게 하는 것을 골라 쓴다. 입 안이 심심할 때마다 물을 마시고, 커피를 마신 뒤에는 반드시 물 2컵으로 보상한다. 씹는 자극이 필요할 때는 단맛이 없는 채소나 무가당 껌을 선택한다.
둘째,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 문제가 되는 음식을 제한한다. 예컨대 5일간 커피를 먹지 않는 식이다. 몇 시간 혹은 며칠간이나 버티는지 스스로를 훈련해 보면 자신이 얼마나 그 입맛의 유혹에 연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먹고 싶은 유혹이 생기면 장소를 옮겨 스트레칭이나 심호흡으로 주의를 분산하는 것이 방법이다. 훈련을 반복할수록 참는 능력이 향상된다.
셋째, 음식 고유의 풍미를 느껴보자. 조리 단계에서 간을 약하게 하는 대신 국이나 찌개에 들어가는 채소를 2배로 늘린다. 국물은 되도록 먹지 말고 김치·깍두기는 물에 씻어 먹는다. 꼭꼭 씹어 천천히 먹으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 기능이 향상돼 적게 먹게 된다. 마지막으로 평온한 감정 상태를 유지한다. 격한 감정과 스트레스, 불안감은 잘못된 입맛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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