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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계실 ♬♡/국내해외영화

회색 빛 우울한 세계, 영화 “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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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의 두 주인공 하정우와 김윤석이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하고, 거기에 똑 같은 감독

나홍진이 연출한 영화 “황해”는 추격자와 많이 닮아 보이기도(하정우가 전작에서와 마찬가지

로 김윤석에게 끊임없이 쫓기는 신세라는 점과 두 남자의 대결 구도가 결국 영화의 줄거리가

되면서 전작과 비교해 피 튀기는 장면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 등등) 하지만 이번엔, 전작처럼

단순히 살인자와 살인자를 쫓는 추격자가 아닌 아내를 찾기 위해 사투를 불사하는 한 고

독한 남자와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 마다 않는 거친 폭력단 우두머리의 예측불허 한

판 대결이 의미심장함과 스릴을 더하고 있다.

 이국적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도 남루하고 고난한 연변 동포들의 생활상과 풍물이 눈에

비치는 순간 문득 저 위의 우리 동포들이 떠올라지는 건 유독 나뿐만이 아니었을 듯싶다. 

가슴이 저릿함을 느끼며 영화에 집중해보지만 거칠고도 참혹한 그들의 일상을 계속 비추는

카메라 앵글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우울한

회색 빛 화면 속으로 내 자신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갔던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었고.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놓여있는 황해를 건너 연변의 한 남자가 한국에 밀항 입국한다.  그의

이름은 구남.  그는 주어진 시간 안에 맡은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밀항하여 연변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개의 삶이 그러하듯 그의 삶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엉뚱한 방

향으로 꼬이고, 그러다 결국엔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미궁 속으로 침전하게 된다.

 영화는 대부분의 우리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저 암흑의

세계를 마치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듯 다소 부자연스럽고 엉뚱하게 비추고 있다.  그러

면서도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또는 애써 외면하고픈 현실의 세계를 마치 내시경 기구

가 우리의 내장을 아주 깊숙이 탐험하듯 그렇게 샅샅이 훑어 내리며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

깨우고 있다.  우리들이 잘은 모르지만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는 어둠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들 앞에 낱낱이 공개되고 만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슴이 꽤 오랫동안 답답했다.  그리고 뭘, 어떤 식으로 나의 느낌을 표현

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두 출중한 배우의 연기력을 마냥 칭찬해야 하는 건

지, 위험도 높은 액션 씬이 정말 실감났었다고 설레발을 쳐야 하는 건지, 너무 장면들이 잔인

해서 고개를 돌렸던 적이 많았다고 투덜거려야 하는 건지 갈피를 못 잡겠고, 좀 더 정확하게

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혹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잡지 못해 좀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나는 그와 비슷하달 수도 있고, 또 다소 다를 수도 있을 중국동포와 연

관된 책 하나를 읽게 되었다.  천운영이 쓴 “잘 가라 서커스”가 바로 그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앞서 봤던 영화 “황해”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두 작품의 유사성이랄까, 공통적

인 주제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영화 “황해”에 대해서만 나의 감상

을 이야기한다고 봤을 때,

 우선 나홍진 감독은 영화 “황해”를 왜 만들었을까? 에서부터 나의 사유는 시작되었다. 

그건 다시 말하자면 그가 영화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건 과연 뭐였을까? 라는 질문으로

도 같은 답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가 내린 결론은 아마도 감

독은 우리들의 황금만능적 사고에 비참하게 물들어가는 연변 동포들의 처참한 내적

몰락을, 아니 그게 본래의 목적은 아니고 그걸 이용해 우리 모두가 지금 앓고 있는 심

각한 인간성 붕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게 아닐까 란 거였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타인의 속사정엔 아랑곳 않는 비정함이 마치 쿨

함인 양 대신 하고 있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서서히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파괴하고

있는 우리들의 깊숙한 내부를 드러내 보여주면서 우리 모두에게 아찔한 충고를 하고 싶었는

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피범벅인 장면들 모두가 흡인력 있게 다가왔다는 건 아니지만 분명 소름

끼치는 현실을 상기시켰던 건 확실했었다고 봤을 때 그의 다소 강렬한 이런 비유는 적절했다

는 생각이 일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쩜 도무지 말을 알아들어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최후

의 통첩 같은 그런 마음으로 일갈을 하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를 거라는 일종의

공감의식이 싹텄던 거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시도는 두 배우의 사실적이고도 섬찟한, 그리고 미친듯한 연기력으로 그

빛을 발했던 게 사실이다.  능글맞은 면가로 철저히 변신한 김윤석과 초췌하면서도 고독하고

강인한 구남을 연기했던 하정우의 연기력은 정말 확실히 살아 날뛰는 생생함 그 자체였으니

까 말이다.  거기다 많이 헷갈리게 복잡다단했던 시나리오 역시 오랜 시간 여운을 남기며 내

뇌리에 자리잡고 있으니 오랜 만에 본 스릴 액션의 진수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