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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극장 개봉영화 중 가장 기대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장훈 감독의 <고지전>이다. 장훈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 단 두 편으로 충무로의 가장 확실한 블루칩이 되었다. 비록 김기덕 감독과의 악연(?), 메이저 영화사와의 밀착(?)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은 면도 있지만 확실히 관객 중심의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세 번째 메가폰을 잡은 작품은 제작비가 100억 원에 이르는 초대작 전쟁영화이다. 그것도 근래 들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요인, 수용자의 의식변화에 따라 쉽게 다룰 수 없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다룬다. 잔인한 이데올로기에 희생되거나 값싼 휴머니즘에 매몰되지 않은 ‘한국전쟁’ 영화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영화가 기대되는 순간이다. 625전쟁의 복잡한 내면 모든 전쟁은 복잡한 역사적 근원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은 특히 그러했다. 남북간의 대립 밑바닥에는 세계질서의 재편이라는 초거대 기류가 깔려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전쟁은 당사자들의 엄청난 죽음을 양산하고 길이 짊어지고 갈 절망을 남겼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한국전쟁은 초반의 확실한 양상과는 달리 갈수록 삼팔선을 중심으로 밀고 당기는 고착전이 되어간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은 전선의 군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도 위에서 펼쳐지는 전략가들의 구상대로 종전이 준비된다. 지도에 선을 긋고 그 선을 기준으로 다시 남과 북이 대치하는 애매한 현상유지 전략이 시도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애록고지가 있는 것이다. 방첩대 강은표 중위는 전쟁이 일어나자 학우들과 함께 총을 들었다. 파죽지세의 북한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자신만만한 인민군 장교(류승룡)가 여린 국군포로에게 그런다. “너희가 이 전쟁에 지는 이유를 알아? 너희는 이 전쟁을 왜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는거야. 1주일이면 이 전쟁 끝 나. 돌아가거라”하고 풀어준다. 과연 전쟁은 1주일 만에 끝나는가? 그 전쟁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쏟아지는 포탄에 울상이었던 그 여린 국군병사는 전쟁이 1년, 2년 계속되면서 살아남았고, 계급이 올랐고, 군인이 되어간다. 강은표 중위는 판문점에서 열리는 휴전회담에 배속했다가 어느 날 애록고지로 전출가게 된다. 애록고지 국군 중대장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서이다. 중대장의 시신에서 우리 국군의 총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왜? 강은표 중위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애록고지에서 전쟁 초기에 헤어졌던 옛 동료이자 전우를 만난다. 그때는 울기만 하던 그 여린 병사가 이젠 씩씩한 군인이 되어 있었다. 휴전회담을 앞두고 단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애록고지의 국군은 무한대로 희생되어간다. 고지 하나를 차지하면 주위 땅이 모두 한국 땅이 되기에. 북한인민군의 전략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강은표 중위는 그곳 애록고지에서 악어중대원의 이상한 행태를 눈치 채게 된다. 그들이 왜 그리 용감한지, 왜 그리 부대원들끼리 밀착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잊으려고 발버둥 치는지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전쟁의 이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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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군인, 용감할 수밖에 없는 군인 |
휴전회담장에서의 강은표 중위는 시니컬하다. 전장에서는 군인뿐만 아니라 죄 없는 민간인까지 희생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전쟁의 의미를 모르는’ 군인은 어느새 ‘전쟁의 의미보다 휴전만을 생각하는’ 베테랑 군인이 되어 간다. 오늘 죽지 않으면 내일 죽을 것이고 오늘 고지를 잃으면 내일 다시 차지하면 되는 군인으로 무감각해질지도 모른다. 악어중대원은 숨겨진 비밀을 공유한다. 그것은 공범만이 가지는 일종의 죄의식이다. 한가한 전쟁이 아니라 죽음의 전쟁터에서만 허락된 집단체험인 것이다. 실제 한국전쟁은 ‘노근리 비극’만큼이나 이라크에서 벌어진 ’프렌들리 파이어‘같은, ’포항전선에서의 비극‘이 비일비재했으리라.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적이 아니라 아군을 쏘아야하는 비극적 상황 말이다. 영화 <고지전>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각인시켜 준다.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시작되었고, 1953년 7월 27일 종전되었다. 하지만 휴전회담은 전쟁 1년도 안 된 1951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휴전회담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사가(史家)의 몫이다. 1951년 공산군의 춘계대공세를 격파한 5월 말 이후부터 유엔군과 공산 세력 간에 휴전협상을 위한 막후 접촉이 진행되었다. 한국은 국회 결의와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을 통해 “한국의 완전자주통일 이외의 여하한 형태의 휴전도 반대한다”고 거듭 천명했다. 하지만 미국(유엔군)도 중국도 소련도 승산 없는 전선에서 발을 빼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침내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개막된다. 이후 조그만 한반도 곳곳에서 피 비린내 나는 전투가 계속되었고 동시에 판문점에서는 2년 넘게 휴전회담이 진행된다. ‘알 수 없는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명분과 실익을 서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외교전이 전선의 총싸움만큼 치열해진 것이다. 회담의 난제는 많았다. 국제적으로는 포로 처리문제가 제일의 난제였지만 남과 북은 현실적으로 휴전선을 어디에 긋는가가 핵심 사안이었다. 한 치의 땅도 더 차지하기 위해 애록고지에서처럼 수십 명,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을 희생해서라도 깃발을 휘날려야하는 것이다. 마침내 1953년 7월 26일, 협정문과 협정문 서명방식에 합의를 본다. 각 수석대표에게 휴전협정에 조인한 권리를 부여하고 쌍방이 동의한 절차에 따라 쌍방 군사령관의 서명(부서)을 받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다음날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는 협정문에 서명하기로 한다. 한국전쟁 발발 3년 1개월 3일째 되는 날이다. 전날 밤, 밤을 새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판문점에 서명식 건물을 세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양측 휴전대표가 입장한다. 북쪽의 회담대표는 북한인민군 남일 대장이다. 그의 직책은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였다. 남쪽에서는 국제연합군을 대표하여 미 육군중장 윌리엄 K.해리슨 2세가 나와서 서명했다. 쌍방 수석대표들은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악수도 생략한 채 휴전협정문에 서명한다. 이 자리에 한국군 대표는 없었다. 한국은 끝까지 휴전을 반대했다. 전쟁을 먼저 일으킨 것은 북한이고, 한국은 그 전쟁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을 레버리지 삼아 한미방위조약을 유리하게 이끌어내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
이날 양측 대표가 서명한 문서는 <<한국휴전협정>>, <<휴전협정에 대한 임시적 보충협정>> 두 가지였다. 이 두 문서가 국문(북한조선말), 영문, 중문 세 가지 언어로 작성되었다. 모두 18부이다. 수석대표가 서명한 문서는 곧바로 양측 최고 책임자에게 보내진다. 문서에 나타난 최고 책임자는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 그리고 국제연합군총사령관 마크 W.클라크 대장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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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의 유엔군 전방사령부에서 기다리던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오후 1시에 한국군 대표를 비롯한 참전 16개국 대표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휴전협정문서에 서명했다. 북한의 김일성은 이날 밤 10시에 평양 수상부 건물에서, 중국 팽덕회는 다음 날(28일) 오전 9시 30분 개성에서 서명함으로써 휴전조인 절차가 완료되었다. 휴전협정문 12항은 이렇다. “적대 쌍방 사령관은.... 적대행위의 완전정지는 본 휴전 협정이 조인된 지 12시간 후부터 효력을 발생하다.” 이에 따라서 <고지전>에서는 그 12시간 동안 가장 살벌하고 가장 피비린내 나고 가장 장엄한 ‘전선야곡’ 고지쟁탈전이 마지막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어찌 되었냐고? 휴전협정에는 “..... 본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72시간 내에 그들의 일체의 군사력, 보급 및 장비를 비무장 지대로부터 철거하다..” 7월 27일 밤 10시에 차지한 땅이 각자의 영역이 되었다. 그리고 72시간 내에 모두 2킬로미터씩 후방으로 빠진다. 비무장지대(DMZ)가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60년. 북한은 꾸준히 한국전쟁은 북한과 미국이 휴전회담의 주체이기에 한국은 낄 자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1953년 7월 27일을 전승기념일이라고 기린다. 그럼 한국의 운명은, 한반도의 운명은 북한과 미국이 결정짓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기이했던 것은 비극적 전쟁에 대한 의지이다. 전쟁은 힘들고, 지옥이다. 엄청난 인적 희생을 낸 것이기에. 그런데 대통령도, 사령관도, 군인도, 학도병도, 모두 북진통일을 울부짖으며 통일을 기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지전>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모두 - 남도, 북도 한결같이 - 이 전쟁이 그냥 이대로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고향으로, 집으로, 학교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이상한 전쟁이다. 전쟁은 왜 시작했을까? 그럼 서로 돌아갔으면 영원히 평화롭게 각자 잘 살아야하는 것 아닌가. <고지전>은 고지 위의 전투보다 고지 아래에서의 전투와 고지 다음의 전쟁이 더 기이한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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